오늘은 최근 LA갤럭시에서 현역 은퇴선언을 한 스티븐 제라드에 대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스티븐 제라드는 축구를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친근한 이름이다.
나에겐 '제라드'라는 이름을 들으면 몹시 가슴이 뛴다.
#스티븐 제라드의 유스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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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제라드 어린시절 매우 앳된 얼굴이다. |
제라드의 처음 포지션은 우리가 알고있는 미드필더가 아니였다.
제라드의 어린시절 포메이션은 우측 풀백이였다. 그러나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수비형 미드필드 역할도 수행하여 어릴때부터 다재다능한 선수였다.
리버풀 유스아카데미 친구는 제이미 캐러거와 마이클 오웬이 있다.
지금 마이클오웬과 제라드의 명성을 비교해 보면 오웬이 비록 라울을 제치고 최고의 영예인
'발롱도르'를 타냈지만 제라드가 더 우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당시 유소년 아카데미의 제라드와 오웬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당연히 오웬이 높게 평가됨)
#제라드 울리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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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드의 첫번째 스승 제라드 울리에 |
오웬이 먼저 데뷔하고나서 제라드도 프로선수로 데뷔했다.
88분 블랙번와의 경기에서 교체선수로 투입되고 콥들은 이 어린선수에게 별 기대 하지 않았다. 이 어린선수가 리버풀을 책임질거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2001~2002년 제라드는 오웬과 함께 '미니트레블'을 달성하여 PFA 올해의 신인상을 거머 쥐었다.
이후 리버풀의 주장이였던 새미 히피아에게 주장완장을 물려받았다.
이른나이 제라드에게 주장완장을 준 이유는 그의 성질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이후 리버풀은 \ 부진을 겪고 제라드 울리에는 경질당한다.
#라파엘 베니테즈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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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전성기와 함께한 베니테즈 |
제라드 울리에감독의 경질이후 리버풀은 울리에감독 대체로 두명을 감독을 정했다.
그 두명의 감독의 이름은 라파엘 베니테즈와 조세 무리뉴다.
특히 조세 무리뉴는 케니 달글리쉬의 열렬한 팬이여서 어릴때 리버풀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 감독직의 경쟁자였던 베니테즈는 프리메라리가의 2강 바르셀로나 레알마드리를 꺾고 발렌시아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2회를 거머쥐어 엄청난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다.
결국 리버풀보드진은 라파엘 베니테즈를 선택해 조세 무리뉴는 이후 첼시의 감독이 됐다.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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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분 제라드의 올림피아코스 3:3 중거리골 |
리버풀의 감독이된 라파엘 베니테즈의 시작은 삐걱거렸다.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 떨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히바우두가 있던 올림피아코스는 전반전에만 2골을 넣으며 리버풀을 압도해갔지만
추가시간 제라드의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리버풀을 16강으로 올려보냈다.
이후 레버쿠젠 유벤투스 첼시와의 대결에서 승리한후 리버풀은 당시 스쿼드상으로 최강의 멤버로 평가되는 AC밀란과 챔피언스 결승에서 만났다.
그 누구도 리버풀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전반전에 3:0 리버풀의 완벽한 패배였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났다.
리세의 크로스를 받아 제라드의 헤딩을 필두로 스미체르의 중거리골 알론소의 PK로 8분만에 3:3 동점이 되었다.
분위기를 불타올랐고 결국 승부차기에 돌입해 두덱의 환상적인 선방으로 리버풀은 2005년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했다.
#영혼의 파트너 페르난도 토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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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토라인 |
공격수의 부재로 고생한 리버풀은 페르난도 토레스를 영입했다.
그해 토레스는 축구팬들에게 엄청난 포스를 선사해주며 발롱도르 3위까지 올라 월드클래스의 경지로 올라선다.
제라드와의 호흡은 그 당시 어느 듀오와도 밀리지않는 리버풀=제토라인 공식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수비적인 전술때문인건가.. 리그 중 단 2패 그것도 빅4클럽중 무패전적을 가졌던 리버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밀려 아쉽게 2위에 머무른다.
이후 베니테즈는 잉글랜드 국가대표에서 제라드와의 호흡이 좋았던 가레스 배리를 노렸지만 맨시티에게 뺏기고 알론소는 리버풀입지에 불안을 느껴 아르벨로아와 함께 레알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침몰해가는 타이타닉
실제로 당시 리버풀 선수였던 리에라 오르테가가 라디오에서 했던말이다.
"리버풀은 침몰해가는 타이타닉이다."
이 발언으로 콥들의 분노를 산 리에라 오르테가는 방출당한다.
하지만 이 발언은 틀리지않았다.
알론소의 부재로 AS로마에서 아퀼라니를 영입했지만 그는 유리몸이였고 결국 리그 7위에 안착했다.
결국 라파엘 베니테즈는 경질되고 풀럼으로 유로파 준우승을 가진 로이 호지슨이 선임되었다. 하지만 이후 제라드 알론소 마스체라노로 황금중원멤버였던 리버풀은 마스체라노마저 바르셀로나로 떠나 제라드는 그들을 잡을 수 없었다.
로이 호지슨의 선임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않았다.
겨울 이적시장 로이 호지슨은 경질되고 리버풀의 전성기를 이끈 케니 달글리쉬가 선임된다.
그는 구시대적 사람이였고 토레스도 마찬가지로 라이벌 첼시로 이적했다.
제라드는 토레스를 잡고싶었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케니달글리쉬는 잉글랜드 코어로 컨셉을 잡고 앤디캐롤 스튜어트 다우닝등을 영입했지만 성공한 영입은 수아레즈, 호세엔리케가 전부였다.
이후 케니달글리쉬역시 경질당하고 브랜던 로저스가 선임된다.
#제 2의 전성기를 달리다.
달글리쉬다음으로 선임된 감독은 스완지 시티를 맡았던 브랜던 로저스였다.
그는 스완지시절 스완셀로나라는 별명을 가진것 만큼 패스 무브먼트를 중요시여겼다.
하지만 제라드는 선굵은 축구를 계속해왔기 때문에 이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다음시즌 로저스는 제라드의 장점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낮아진 기동력을 최대한 활용하기위해 제라드 그를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기용하기시작한다.
이는 대 성공이였다. 물론 맨체스터 시티에 밀려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지만 늦은나이에도 불구하고 도움왕을 거머쥐어 제 2 전성기 기량을 뽐냈다.
#또다른 도전
이후 수아레즈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고 그다음시즌 제라드 역시 이적한다.
당시 콥들의 반응을 실망적이였다.
아무리 전성기가 지나고 주장을 방출하다니..!?
이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이였다.
제라드는 플레잉 코치로 계약을 제시했지만 머니볼컨셉을 가진 구단은 제라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않았다.
이후 제라드는 은퇴를 원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원해 LA갤럭시로 이적한다.
그리고 2016년 11월 24일 제라드는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